‘정권심판’ 선거에 가려진 진보정당들 갈등과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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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주식/주식ai : 이번 총선의 큰 그림을 보면 사회의 진보와 변혁을 바라는 사람들에게 기쁘고 반가운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한국 사회를 지배해온 지배블록의 주류와 기득권 카르텔에 기반한 정부와 정당이 크게 패배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노동운동과 진보진영, 진보정당들은 대체로 우울하고 가라앉은 분위기이다. 노동 대중이 기뻐하는 상황에서 진보좌파들은 그것을 공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부터 뭔가가 어긋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대중과 함께 기뻐하고 대중과 함께 슬퍼하는’ 게 아니라 그 반대이니 말이다.

이것은 진보정당들의 총선 결과가 매우 좋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 그나마 좋은 결과를 얻을 것으로 보이는 진보당은 다른 진보정당이나 단체들과 엄청난 갈등을 겪고 있고 심지어 ‘민주노총이 지지하는 정당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는 상황과 관련있다.

지난해 연말만 해도 희망이 보였다. 지난 10년간 선거에서 몇몇 지역적 예외 말고는 협력한 적이 거의 없던 정의당과 진보당이 선거 연합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것은 ‘이대로면 누구도 원내정당이 될 수 없다’는 정의당과 진보정당들의 뒤늦은 위기감이 가져온 결과이기는 했다.

그러나 정의당은 자신들을 플랫폼으로 한 연합정당을 주장하고, 진보당은 민주노총을 플랫폼으로 한 연합정당을 주장했다. 촉박한 시간 속에 장단점이 뚜렷한 방안을 서로 고집하다가 진보정당들의 선거 연합은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10년간의 갈등과 분열, 불신이 낳은 결과이니 이제 와서 누구를 탓하기도 어렵다.

이 상태에서 3% 봉쇄 조항을 뚫고서 필사적으로 의회에 들어가려는 진보정당들의 각자도생적 선택지들은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정의당은 녹색당과 통합하면서 부분적 진보 통합을 이루고 기후 의제를 강조하는 방향을 택했다.

진보당은, 마침 병립형 선거제도로 후퇴가 아니라 연동형 유지를 선언하며 민주당이 제안한 비례연합 정당에 들어가서라도 3% 봉쇄 조항을 넘으려는 타협안을 택했다. 노동당은 의회 진출보다는 좌파적 원칙을 더 선명하게 하면서 선전하는 기회로 총선 공간을 활용하는 방안을 택했다.

이것은 각각이 모두 아쉬운 부분과 이해할 부분이 있는 선택들이다. 하지만, 진보정당들의 의회 진출과 선거에서의 생존 자체가 의심되고 존재감이 너무나 축소된 상황에서 나온 선택들이라는 것을 감안해서 평가할 수밖에 없다.

각자의 선택을 존중하면서도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비판할 것은 비판하면서, 총선 결과를 바탕으로 함께 그 성과와 한계를 평가하며 앞으로 연대의 길을 남겨놓는 게 바람직한 태도였을 것 같다. 하지만 현실은 그 정반대였다.

의회 진출을 위한 서로의 선택과 선거 전술을 비난하면서 지난 10년간의 진보정당들의 분열과 갈등이 해소되기는커녕 새로운 수준으로 폭발하고 있다. 특히 비난이 집중되고 있는 것은 강제해산과 ‘종북’ 낙인 때문에 지난 10년간 제도정치에서 배제돼 온 진보당이다.

민주당 주도의 비례연합 정당에 들어가면서 진보당은 가까스로 기회를 얻었지만, 그 과정에서 피할 수 없었던 타협때문에 비판을 넘어서 연대의 대상이나 민주노총이 지지하는 정당에서 추방해야 한다는 비난과 공격에 휩싸여 있다. 같은 논리로 기본소득당이나 사회민주당은 이미 ‘진보정당’으로 분류도 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과도한 측면이 있다. 진보당은 독자적인 진보정당을 해산하고 민주당으로 완전히 흡수될 것을 선택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 대선 때의 일부 ‘좌파’들처럼 반동적 우파 정당을 대표한 윤석열 후보를 지지한 것도 아니고, 일부 ‘진보’ 정치인과 활동가처럼 악명높은 조선일보와 손잡은 것도 아니다.

물론 선거에서 실리를 위해 자유주의적 정치세력인 민주당과 선거 연합을 했는데, 형태가 좀 다르긴 해도 이것은 2014년에 통합진보당이 강제 해산된 이후에 유일 원내정당 지위를 독차지했던 정의당이 해 왔던 전술이기도 하다. 박근혜 정부 아래서 민주당과 정의당은 선거 때 수시로 후보 단일화와 공동 유세 등을 했다.

당시 진보당(이나 민중당)은 지독한 ‘종북’ 낙인 때문에 이 연합에 낄 수조차 없었다. 분열한 진보정당들이 서로간에는 협력하지 않고, 일부는 배제당하고 일부는 민주당하고만 손을 잡는 모습은 당시에도 매우 씁쓸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정의당은 진보정당도 아니고 노동운동의 연대 대상에서 추방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진보좌파에게 그것은 투쟁에서 원칙의 문제가 아니라 선거나 의회에서 전술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기득권 우파에 맞서 자유주의 정당이나 후보에게 비판적 투표를 하거나 후보 단일화, 선거 연합을 하는 것은 국제적 좌파들의 실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심지어 오늘날의 진보좌파보다 훨씬 더 급진적이었던 1세기 전 러시아 볼셰비키의 실천에서도 발견된다. <볼셰비키는 어떻게 의회를 활용했는가>, <공산주의 좌익 소아병>, <레닌의 합법 정당론>, <레닌의 선거와 의회 전술> 등을 조금만 살펴봐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자유주의 정당과 협정을 맺고, 공동 명부를 작성하고, 선거 연합을 한 사례들을 제시하면서 레닌은 이렇게 말한다. “타협 일반의 허용 가능성을 거부하는 것, 그것은 진지하게 고려하기조차 어려운 어리석은 짓이다 …. 볼셰비즘의 온 역사가 유연한 대응, 협조, 부르주아지 정당을 포함한 다른 정당들과의 타협의 사례로 가득 차 있음을 모를 리 없을 터인데!”

물론 100년 전 러시아와 지금 한국 상황은 다르고, 볼셰비키나 레닌의 실천과 주장만 신봉하는 것처럼 갑갑한 태도도 없다. 정말 중요한 것은 한국의 구체적 상황에 대한 평가와 그에 맞는 구체적 전술이다. 그러려면 왜 지금 진보정당 20년의 역사가 독자적으로 3% 봉쇄 조항도 못 넘을 수준으로 후퇴한 것인지 평가해야 한다.

지난 몇 년간 선거에서 누군가를 ‘민주노총 지지 후보’로 결정해도 1~2%의 득표밖에 얻지 못하고, 그래서 진보정당과 후보들이 명분보다 실리를 쫓아가는 일이 반복되는 이유가 무엇인지도 돌아봐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진보정당들이 분열과 위기를 극복하고, 연대의 힘으로 민주당 의존을 벗어나 독자적 대안으로 성장할 길을 찾아야 한다.

그런 길이 잘 보이지 않는 상황 속에서 진보당이 10년 동안의 ‘종북’ 낙인과 왕따를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만 탓하기는 어렵다. 원내정당이냐 아니냐는 투쟁과 연대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차이를 낳는다는 것도 부정하기 어렵다. 이번 타협을 디딤돌 삼아 독자적 진보정당의 길을 더 넓히겠다는 말도 거짓말은 아닐 것이다.

물론, 이것은 문제도 많은 타협이다. 진보정당의 독자성은 일시적으로 흐려질 수밖에 없고, 보수적 여론의 눈치를 보는 민주당의 요구 때문에 일부 후보들을 사퇴시켜야 했다. 충분한 논의와 설득이 안 된 상태에서 급작스러운 전술 변화 때문에 진보당 내부에서도 불협화음이 있고, 진보정당들과 민주노총 속에서 불신과 갈등은 커지고 있다. 울산 동구에서 노동당 후보를 지지했다가 뒤집은 것은 배신감을 낳았다. 진보당은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책임이 있다.

이것이 뼈아픈 이유는 아무리 총선에서 좋은 결과를 얻더라도, 노동운동과 진보진영 속에서 불신과 갈등이 커지면 연대와 투쟁에 도움이 될 리 없기 때문이다. 기득권 우파의 '종북몰이'와 이간질에도 더 취약해진다. 이번 총선에서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을 완패시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런 선거 결과를 기회삼아 더 큰 투쟁과 연대를 만들어내는 것이기에 이것은 더욱 걱정되는 일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번 총선에서 윤석열과 국민의힘이 대패하는 것은 무조건 좋은 일이다. 화물연대와 건설노조가 무참히 짓밟히던 윤석열 정부 초기와 달리 노동 대중이 투쟁하고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회복하고 있고, 총선 결과는 그것에 기름을 부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국민의힘이든 민주당이든 똑같다'라는 공허하고 추상적인 말만 할 때가 아니라는 말이다.

국민의힘이 국회에서 소수파로 줄어들고 윤석열 정부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되는 것은, 진보진영과 노동운동이 투쟁과 연대를 건설하는데 더 좋은 조건이 마련된다는 뜻이다. 진보좌파는 그런 조건을 기회로 만들며 투쟁과 연대를 더 전진시키기 위한 준비와 노력을 해야 한다. 선거 전술에 대한 이견과 논쟁을 서로 간의 신뢰와 네트워크를 파괴할 정도로 발전시킬 게 아니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