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을 에는 혹한 속 ‘1만 5900배’…이태원 유가족 또 고행

재원 : 장기간의 단식농성, 삼보일배와 오체투지에 이어 삭발과 혈서 쓰기까지 감행했던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이번엔 혹한 속에 '1만 5900배' 절하기에 돌입했다.

ai주식/주식ai :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 안건을 다룰 것으로 예상되는국무회의를 하루 앞두고 특별법 공포를 마지막까지 호소하려 강추위를 무릅쓰고 또 몸을 혹사하는 것이다. 최악의 패륜 정권이 끝끝내 책임 회피와 진실 은폐로 일관해온 탓에 유가족들은 참사 발생 이래 단 하루도 심신의 안정을 취하지 못한 채 끝이 안 보이는 가시밭길을 걷고 있다.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는 22일 오후 서울광장 분향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무회의에서 특별법을 공포해 달라고 촉구하는 의미로 밤새 1만 5900배의 절을 하는 '철야 행동'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1만 5900'은 이태원 참사 희생자 159명을 상징하는 숫자다. 이태원 참사 특별법은 지난 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19일 정부로 이송됐으며, 23일 국무회의에서 거부권 행사가 결정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서울 전역에 한파주의보가 내려진 이날 유족과 시민 약 30명은 영하 8도, 체감온도는 영하 14도에 달하는 맹추위에도 분향소 바로 앞 야외에 얇은 등산용 매트와 방석을 깔고 가벼운 외투만 걸친 채 오후 2시 15분쯤부터 희생자들 영정을 향해 절을 하기 시작했다. 10초에 한 번씩 울리는 종소리에 맞춰 먼저 합장을 한 뒤 바닥에 이마를 대고 일어나는 절 1회 동작을 다 마쳐야 하기 때문에 쉬엄쉬엄 할 수도 없었다.

1인용 스펀지 깔개를 이어 붙였지만 맨바닥에서 올라오는 한기를 막기엔 역부족이어서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절이 계속되면서 땀이 흐르기도 했으나 살을 에는 칼바람이 내내 몰아친 탓에 땀은 곧 마르고 체온을 유지하기 쉽지 않아 보였다. 날이 저물자체감온도는 영하 18도까지 떨어졌다.그럼에도 유족들은 흔들림 없이 절을 이어갔고 숨 쉴 때마다 하얀 콧김과 입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릴레이식으로 1시간마다 교대로 진행하는 밤샘 절하기는 23일 오전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일반 시민도 동참할 수 있다.

이정민 유가협 운영위원장은 철야 행동에 앞선 기자회견에서 다시금 정부‧여당의 무도함을 규탄하며 특별법 공포에 국민들이 함께 해줄 것을 곡진하게 요청했다. 그는 국민의힘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건의한 지난 18일 삭발에 나서 머리칼이 희끗희끗한 흔적만 남은 상태였다. 최강 한파에 모자도 쓰지 않았다.

"여당인 국민의힘 이만희 의원은 이태원 참사 특별법 반대토론에서 '국론이 분열되고 사회적 혼란이 야기되며, 국가의 행정력 및 국민의 혈세가 엉뚱한 곳에 낭비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집권여당이 참사를 대하는 자세가 이렇습니다. 우리가 집권여당을 신뢰하지 못하고, 더 이상 기대를 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정부여당은 그동안 단 한 번도 진정성 있는 자세로 유가족들의 목소리를 들어보려 하지 않았고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그 어떤 대책도 내놓지 않았습니다. 단지 정권에 위해가 될까 봐 오히려 유가족들을 악마화하고 핍박하는 모습만 보여왔습니다. 희생자의 안타까운 죽음을 모두 그들의 책임으로 전가하고 이태원이라는 공간은 가서는 안 될 범죄도시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러한 왜곡된 메시지로 많은 사람이 이태원 참사의 진실을 알지 못하게 만들어 버리고 유가족들을 이기적인 집단으로 매도하여 공격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행태야말로 그들이 말하는 국론 분열을 획책하는 것입니다.

사회적 혼란이 야기되었다고요? 맞습니다. 이태원 참사 그 자체가 사회적 혼란입니다. 그러면 아시겠죠? 이런 사회적 혼란을 야기한 주체가 어디인지 말입니다. 또한, 국가의 행정력 및 국민의 혈세를 말했습니다. 공권력이 무너진 그 순간, 그리고 그 이후의 대처들 모두가 국가의 행정력과 혈세를 낭비하는 단초였습니다. 본인들이 내뱉은 이태원 특별법의 반대 이유가 실은 자신들이 저지른 잘못들 때문입니다. 그것은 특별법을 반대하는 이유가 아니라, 스스로 반성하고 사과해야 하는 일임을 깨닫고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지난 16일 검찰수사심의위원회는 이태원 참사 부실 대응 협의를 받아온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에 대해 기소 의견을 내었습니다. 검찰은 그동안 불기소 의견을 내면서 사건을 뭉개고 있었고, 결국 여론의 눈치를 보다가 외부전문가에게 그 판단을 맡겼습니다. 이것만 보더라도 독립된 조사기구가 더더욱 필요한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경찰과 검찰이 자신들이 해야 할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이 원하는 대로 외부 전문가인 특조위를 통해 진상을 규명하자는 겁니다. 막을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진실은 아무리 덮어보려고 발버둥 쳐도 덮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책임지지 않으려는 정부와 오로지 정권 유지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여당은 더 이상 국민의 신뢰를 얻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 간곡히 호소드립니다. 이 참사는 단순한 사고가 아닙니다. 많은 사실이 은폐되어 있습니다. 쏟아지는 112신고에도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고, 마약 수사에만 집중하였으며, 집회 대응에 공권력을 집중시킨 이유 등 수많은 사실관계가 밝혀지지 않은 공권력의 부작위로 만들어진 대형 참사입니다. 우리는 오늘 국무회의를 앞두고 정부에 특별법 공포를 다시 한 번 촉구하는 동시에 국민 여러분께 함께 해주십사 호소하는 마음으로 1만 5900배의 철야 기도를 드립니다. 부디 유가족의 진상규명을 향한 진심을 알아주시길 간곡히 호소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