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슨 메이플스토리 ‘남혐’ 이미지 논란이 남긴 것

[미디어스=윤광은 칼럼] 게임 ‘메이플스토리’ 홍보 영상에서 여성 캐릭터 엔젤릭 버스터가 ‘집게손가락’ 포즈를 취했다고 논란이 된 사건의 전모는 잘 알려진 상태다. 넥슨은 ‘남성 혐오’에 단호하게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그래픽을 제작한 하청업체는 사과문을 냈다. 그림을 그렸다고 알려진 여성 애니메이터가 개인 SNS에서 했던 발언이 유포되면서 사안은 ‘페미’ 애니메이터의 ‘남혐’ 행각이라 규정되었지만,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저 집게손 그림을 그린 건 해당 애니메이터가 아니라 40대 남성이었다고 한다.

이 논란에 관해선 많은 비판과 논평이 제기된 상태다. 만약 특정한 성별이나 정체성을 가진 유저들을 모욕할 의도로 콘텐츠에 숨은 메시지를 집어넣는다면 당연히 문제가 될 수 있다. ‘집게손가락’은 한국 남성들의 성기 사이즈를 조롱하던 커뮤니티 메갈리아의 상징이란 것인데, 논란이 된 이미지의 포즈는 엄지와 검지를 들고 있을 뿐 아무리 봐도 그와는 좀 다른 모양이다. 이런 모양의 손가락 포즈는 국내외 다른 애니메이션 이미지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애매모호하고 별다른 의미값도 없는 이미지를 ‘남성 혐오’의 상징으로 비약시켜 주는 근거는 해당 애니메이터가 페미니스트이고 평소 ‘남성 혐오’ 발언을 뿌렸다고 SNS에서 털어 낸 행적이다. 하지만, 애니메이터의 발언들을 살펴보면 남성을 증오하는 것이 아니라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내용이었다. 게다가 엔젤릭 버스터를 그린 것이 다른 남성 애니메이터라는 보도가 사실이라면 비판자들의 논리에서 근거라고 할 만한 것 자체가 사라져 버린다.

정의당 류호정 의원은 여성들이 소비자인 산업의 콘텐츠에 일베 표식을 숨겨 놓는 상황을 예로 들며 집게손 포즈를 문제 삼는 여론에 동조했다. 하지만 일베를 배격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이 일베라서가 아니다. 일베에서 일어나는 민주주의 부정과 소수자 혐오, 지역 차별 선동 같은 구체적인 행태가 논점이 돼야 한다. 그런 문제가 드러나지 않은 상태에서 단순히 일베에서 쓰는 것과 대충 비슷하게 생긴 표식이 보인다는 이유로 문제시하거나 직업적 불이익을 줄 수는 없다. 그건 난센스에 불과하다.

페미니스트를 일베와 등치하는 어법은 메갈리아가 등장했을 때부터 안티 페미니스트들이 사용한 전략이다. 페미니스트를 일베 수준의 반사회적 집단으로 끌어내리며 조건 반사적으로 배제하려는 것이다. 페미니즘을 곧 ‘남성혐오’라 표현하며 페미니스트를 혐오 집단으로 몰고 간다. 엔젤릭 버스터 논란은 다른 게임 여성 작화가들의 행적도 유포되면서 업계에서 페미니스트를 색출하는 사상검증으로 확대되고 있다. 페미니즘을 일베에 빗대고 있지만, 이러한 광적인 반여성주의와 여성 개개인에 대한 집단적 가학 행위야말로 일베에서 횡행하던 반사회적 행태에 불과하다.

이런 일은 처음 벌어진 것이 아니다. 남성향 콘텐츠를 만드는 여성 노동자가 페미니스트란 이유로 공격당하고, 여초 커뮤니티에서 쓰는 유행어를 썼다는 이유로 ‘남성 혐오자’로 몰리는 따위의 논란 말이다. 이런 논란은 예외 없이 ‘남초 커뮤니티’에서 발생하고 있다. 사회적 가치가 없는 논란들, 심지어 구체적인 논점도 없고 기본적인 논리 체계도 갖추지 못한 주장들이 몇 날 며칠에 걸쳐 게시판에서 악다구니를 쓰는 ‘화력전’으로 수행된다. 그러면 언론이 받아쓰며 공론화를 해주고, 기업들이 머리를 굽히며 요구를 따르고, 정치인들이 말을 얹으며 동조해 준다. 그렇기에 이 악순환이 끝없이 이어지며 반복된다.

인터넷은 책임성 없는 익명의 말들이 여론 혹은 공론으로 승격될 특설 무대를 설치해 줬다. 면 대 면으로 하지 못하는 말들, 생활 단위와 시민 사회, 제도화된 공론장을 거치며 걸러져야 할 가치 없는 말들, 말에 이르지 못한 말들이 너무도 쉽사리 말로서 대접받는다. 인터넷에서 아우성치는 말들은 더 규범적으로 걸러져야 한다. 인터넷 밖이건 안이건, 어떤 층위에서든 시민 사회의 게이트 키핑 기능이 복원되어야 한다. 특정 커뮤니티 유저들이 방구석에서 키보드 몇 번 두드리는 책임 없는 말들로 번번이 여론이 들썩이고 사회적 가치가 좌우된다. 이 사회 공론장이 특정 인터넷 사용 계층을 중심으로 사유화 되고 있으며 그 수준이 참담할 만큼 퇴행하고 있다는 단적인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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