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생각하는 본질은 “댓글 타령”이었다

속내야 미루어 짐작하지만 그래도 굳이 궁금할 때가 있다. 덩치 큰 신문들을 보면 가끔 그렇다. 예컨대 이런 것이다. 20일자 신문들이 모두 국정조사를 다뤘다. 애초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을 ‘댓글 공방’으로 치부하고 싶은 신문들은 ‘촛불 시민’ 외면하듯 비슷한 태도를 보인다. 보도를 안 할 순 없으니 그냥 싸잡아 중계하는 거다. <권은희 “은폐·축소된 발표”…경찰 분석팀 “은폐 아니다”> 제하 기사의 조선일보처럼, <“수사 외압 있었다” “선거개입 안했다” 세 여인의 진실공방> 제하 기사의 동아일보처럼 말이다. 진실까지 바라진 않더라도 최소한 쟁점과 시비 정도는 가려줘야 할 것 같은데 이런 식이다.

검찰의 경찰수사 왜곡과 국정원의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왜곡

근데 다른 사안에 대해서는 참 적극적이다. 잠자던 지면이 깨어나는 것 같다. 그런 기사를 19일자 조선일보에서 봤다. 경찰이 국정원 댓글 수사결과를 은폐했다는 인상을 주도록 검찰에서 녹취록을 변형·과장했다는 주장을 <검찰, 국정원 댓글 관련 ‘경찰 CCTV 녹취록’ 일부 왜곡> 기사로 1면에 배치하더니 10면에 대단한 꼼꼼함을 발휘했다. 거의 전면을 채워 검찰이 왜곡했다는 사례를 소개하고 <검찰 수사결과 발표와 실제 동영상의 차이점>이라고 표까지 정리해 놨다. 이런 경우가 의도를 미루어 짐작하지만 그래도 굳이 궁금한 경우다. 다른 사례,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보도를 겹쳐보자.

국정원이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불법 공개했다. 처음엔 발췌본을, 이어서 전문을 공개해버렸다. 근데 한껏 욕먹은, 김정일 위원장에게 “보고 드린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이나 “NLL 포기” 발언은 없었다. 해석의 차이를 감안해준다 하더라도, 원문 자체에 대한 작의적인 편집이 존재했다. 국정원이 불법 공개한 대화록 전문과 발췌본을 대조해보면 하다못해 발췌본의 몇몇 대목에 붙어있던 김정일 위원장‘님’자가 전문에는 없었다. 노 대통령의 발언을 거친 표현으로 조작하거나 NLL 포기와 반대되는 발언은 의도적으로 누락했다. 노 대통령 제안의 핵심인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구상을 대폭 축소하고 해주공단 언급은 아예 빠져있는 식이다. 앞서 검찰의 경찰 녹취록 왜곡 주장을 소화하는 조선일보의 세심함이 왜 이런 사안에 대해서는 발휘되지 못했을까.

“왜곡 논란 빚을 만한 자료를 공개한 책임은 가볍지 않다”

19일 조선일보가 다룬 이 사안을 동아일보는 20일자 사설에서 이어받았다. 동아일보는 <검찰은 증거 왜곡 논란 자체를 부끄러워해야 한다> 사설에서 “동영상이란 것이 어느 부분을 잘라서 어디다 갖다 붙이느냐에 따라 받는 인상이 달라지거나 사실을 왜곡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이렇게 맺었다.

검찰 기소대로 국정원의 댓글 공작이 선거 개입에 해당되는지, 경찰의 축소 수사가 있었는지는 법원이 판단할 일이다. 다만 검찰이 왜곡 논란을 빚을 만한 자료를 공개한 책임은 가볍지 않다. 검찰은 “요약 정리 과정에서 일부 누락 부분이 있을 수 있지만 큰 흐름은 공소사실을 뒷받침한다”고 변명했다. 안이한 인식이다. 큰 흐름과 상관없이 왜곡된 녹취록은 여론에 영향을 미쳤다. 수사의 최후 보루인 검찰마저 ‘짜깁기 유혹’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

이 또한, 의도야 미루어 짐작하지만 그래도 굳이 궁금하다. “어느 부분을 잘라서 어디다 갖다 붙이느냐에 따라 받는 인상이 달라지거나 사실을 왜곡할 수 있다”는 지적은 왜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발췌본과 전문의 경우에는 해당하지 않을까. “왜곡 논란을 빚을 만한 자료를 공개한 책임은 가볍지 않다”는 비판이 국정원으로 향하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검찰만 ‘짜깁기 유혹’에 넘어가서는 안 되는가. 국정원은 그래도 되나. 짜깁기를 넘어, 국정원이 애초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불법 공개한 책임에 대해 이 신문은 왜 그리 너그러울까. 그 단초를 전날인 19일자 동아일보 <이젠 특검 하자는 문재인, 댓글 미련 언제 버리나> 사설에서 봤다. 이런 대목이 나온다.

민주당은 국정원 국정조사가 채 끝나기도 전에 다시 특검을 하자고 요구했다. 언제까지 댓글 타령을 하려는 것인지 모르겠다.

언론이 공정하지 않은 사회는 공정하지 않다

특검 요구를 문제 삼은 사설 주제보다 눈에 드는 것은 “언제까지 댓글 타령”이냐는 대목이다. 굳이 궁금해 했던 속내가 결국 이것 아닌가 싶었다. 민주주의의 근간을 허무는 행태,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의 본질을 이 신문은 “댓글 타령”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선택적인 세심함을 과시한 조선일보 역시 다르지 않을 것이다.

뻔히 속내가 보이는데 굳이 궁금할 때가 있는 것처럼, 남 다 아는 얘기라고 생각하지만 굳이 말을 꺼내고픈 때도 있다. 이를 테면 이런 얘기다. 언론은, 우리 사회의 거대언론은 편을 든다. 흔히 언론의 본령이라고 하는 감시와 비판 또한 이들 언론은 선택적이다. 때문에 공정하지 않다. 언론이 공정하지 않은 사회 역시 공정하지 않다. 공정할 수 없다. 이 당연한 귀결이 너무 섬뜩하다. 그래서 우리는 뻔히 속내가 보여도 굳이 궁금해 해야 한다. 다 아는 얘기라 여겨도 굳이 말해야한다. 아 말 같지 않은 말이, 너무 절실하다.